2’한물간 90s icon’
지난 2014년 발매된 서태지 9집, Quiet Night 수록곡 90s icon의 가사 중 한 부분이다. 그는 스스로를 한물간 가수라고 자칭했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서태지가 있었기에 서태지(의 노래)를 들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으니까.

서태지를 좋아한다고?
1996년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의 판도를 뒤흔들었다고 평가를 받던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를 선언했다. 당시는 길거리 레코드 가게 앞을 지나갈때면 언제나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노래방에서도 그들의 노래는 늘 상위권을 달리고 있었다.
여느날처럼 아버지가 틀어 놓은 뉴스를 억지로 보는 와중에 그들의 은퇴 기자회견 장면이 나왔고 전국의 수많은 팬들이 울고 불고 난리가 난 모습이 그대로 방송에 탔다. 연일 나오는 방송을 보면서 왜인지 모르겠으나 ‘그래. 내가 가수가 되서 저 팬들의 마음을 달래줘야겠다’라는 목표가 생기게 되었고 그 이후로 서태지와 아이들 노래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가수가 되지 않았다. 재능도 없었거니와)
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또래 친구들은 96년도 후반에 등장한 H.O.T를 광적으로 좋아했다. 다들 H.O.T노래를 듣고 그들의 패션이나 춤을 따라할 때 나홀로 서태지 노래를 듣다보니 괴짜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서태지와 아이들 전 앨범을 구매해서 테이프가 늘어질 정도로 매일 들었고 그의 솔로 앨범부터는 CD로 들으며 사춘기와 20대를 보냈다.
서태지 노래가 나에게 미친 영향
서태지(의 노래)가 매력적이었던 것은 도대체 알 수 없는 가사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가수들이 ‘사랑’을 주제로 한 노래를 부를 때 유달리 서태지 노래에는 그보다는 사회 문제가 주를 이루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비판하는 경우보다는 상당히 은유적 표현이 많았다. (솔로 컴백 이후 음반들이 더욱 그러한 인상이다.) 서태지 가사에 대해서는 팬들 뿐만 아니라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해석들을 내놓기 일수였다.
나는 그러한 서태지의 방식이 무척이나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1998년 7월 7일 발매되었던 솔로 1집이자 정규 5집 앨범 자킷에는 암호와 같은 영문이 실려 있었는데,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로 시작 되는 이상의 시 오감도(烏瞰圖)였다. 후에 이 사실을 알면서 ‘시(詩)’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감수성이 예민하던 중학교 시절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운이 좋게도 교내 및 지역 백일장 시 부문에서 여러차례 입상 하기도 했었다. (사실 대학도 문예창장학과를 가려고 했으나 고3때 있던 대입이 걸린 백일장에서 낙선하며 포기 했다.)
이후로 시는 아니지만 글을 쓸 일이 많이 생겼고 이러한 경험들이 큰 도움이 되었다. 만일 내가 서태지 노래를 듣지 않았었다면 지금처럼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서태지를 들으며 성장한다.
최근 이유 모를 자존감의 급격한 하락에 우울한 날이 늘어났다. 퇴사 이후 호기롭게 시작한 창업(프리랜서)이었지만 작고 큰 장벽들이 있었고 고정적 수입이 없는 시기에 청년에서 중년으로 넘어가면서 알 수 없는 중암갑이 나를 옥죄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작업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오랜만에 서태지의 9집 앨범을 틀어 놓았다. Intro를 지나 소격동, 크리스말로윈, (이번 앨범 중 가장 사랑하는) 숲 속의 파이터를 지나 플레이리스트 중반을 향하고 있었고 나 또한 음악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집중하기 시작했다.
“해답이 없는 고민. 하지만 밤이 온다면 나의 별도 잔잔히 빛나겠죠.”
그러다 문득 이 가사가 귀에 들어 왔고 나도 모르게 작업을 잠시 멈추었다. 90s icon의 엔딩이었다. 답을 찾으려고 하면 할 수록 해답이 없는 고민을, 지금 내가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밤이 온다면 나의 별도 빛날 지도 모른다는 그 실낱 같은 희망. 어쩌면 그 희망이 나를 일본에 오게 했고, 지금의 삶이 있게 했으며 최근의 창업도 가능하게 했다.
‘별이 되어 빛나도 될 것을 왜 굳이 달이 되려고 할까?’
서태지 노래를 들으며 마음을 다잡았고 우울에서 벗어나 다시금 더 먼 내일을 위해 달려 갈 수 있는 활력을 되찾은 기분이 들었다. 어릴때 그의 노래와 가사에 심취해 있던 것 처럼 오늘도 서태지를 들으며 성장을 향해 나아가본다.